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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12 July 2022

주일설교: 이웃이 왜 궁금해요? - 크리스천의 의무



말씀 : 누가복음 10:25-37
주제 : 이웃이 왜 궁금해요?


차례

1. 율법교사와 예수님의 대화
2.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3. 크리스천의 의무

[[1. 율법교사와 예수님의 대화]]


오늘 말씀은 “율법교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대화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멋진 주제입니다. 멋진만큼 예수님 이전에도, 벌써 수천 년 동안 인기 만점의 주제였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신명기 6장 5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대표하였고, “이웃 사랑”은 레위기 19장 18절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율법교사 뿐만 아니라, 누구나 당연히 잘 알고 있던 말씀입니다.

당연히, 수천 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의 역사는,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율법교사와 예수님의 대화는 간단했고, 분명했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멋진 주제였습니다. 간단하지만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에, 예수님은 재치있게 누구나 알고 있는 핵심을 끌어내면서, 그 핵심을 그대도 행하면 살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아무 문제없이 대화가 진행되자, 율법교사가 제대로 열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를 시험에 빠뜨리고 싶어서 질문했는데, 예수께서 잘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웃 사랑”과 관련해서, 우리도 율법교사의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해 봅시다.

첫째, 두 개의 물컵

첫째, 저는 두 개의 물컵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물은 절반만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절반, 그리고 채우지 않은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몫입니다. 실천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개의 컵을 받아 들고, 고민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신명기 6장 5절의 “하나님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대표하는 레위기 19장 18절의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 찬양, 기도, 성경, 묵상을 통해 간절하게 노력합니다. 이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 활동, 봉사, 자선, SNS, 카톡으로 간절하게 소통합니다. 문제는, 한 개의 컵만 마실 수 없다는 규칙입니다. 두 개의 컵으로 마셔야 한다는 규칙을 예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마리아”라는 이름

둘째, “사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마리아”는 차별의 언어입니다.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대놓고 차별하였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화가 나서 했던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야고보와 요한도 사마리아를 ‘하찮은 존재’, ‘차라리 없으면 좋은 나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안된다고,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셨습니다.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하고 숙소로 데려가서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그는 추가로 들어갈 비용으로 두 데나리온(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적어도 $336)을 여관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이웃이 누구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가장 못된 사람을 이웃으로 소개합니다. 그 못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인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당혹스러운 도전입니다.

[[3. 크리스천의 의무]]


우리 앞에는 두 개의 물컵이 놓여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의무는 반드시 두 개의 물컵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차별의 언어를 지우는 데서 시작합니다. 가장 못된 마음을 “이웃 사랑”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십자가 사랑입니다.

이웃을 왜 궁금해야 합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듯이, 우리 곁에 이웃을 알아가고 많이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삶을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복된 소식, 복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유튜브에서 설교 듣기 : https://youtu.be/xMCl9b1Jn1g
함께 읽을 수 있는 블로그 : 이웃과 분쟁 해결을 노력

Monday, 27 June 2022

주일 설교 : 예수 따름


본문 : 누가 9:51-62 주님을 따름
주제 : 열매 맺는 예수 따름(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차례
1. 이웃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2. 예수를 따라 사는가
3. 제자들의 실패
4. 저마다 예수를 따르고 싶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좋은 열매가 맺히겠지요.

[[이웃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이웃 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웃 교회가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첫째, 만난 장소가 교회이니, 교회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햇빛으로 자연채광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옛 전통과 신학을 따라 8각형 모양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블럭으로 쌓아 올린 까닭은 유지 보수를 쉽게 하려고 배려한 것이랍니다.

둘째, 교회 역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8각형 교회는 건축가 에릭 로빈슨이 설계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1823년에 카에오 지역에 도착한 선교사가 나티우루 마오리 부족에게 쫓겨나서 숲속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200년이 지난 지금 밝혀진 이야기가 있답니다. 그 때 나티우루 부족은 선교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해가 겹쳐서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온난화와 코비드19로 바뀌는 환경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바뀐(meta) 교회, 대형(mega) 교회, 새로운 가치, 전통, 음악, 지역사회; 여러 가지 주제가 꼬리를 물고 툭툭 튀어 나왔습니다.

[[예수를 따라 사는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한 가지 주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창문을 통해 비춰 들어오는 햇빛 이야기를 한 것도, 어떻게 얼마만큼 햇빛이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들이 모이면, 할 이야기가 그렇게 뻔한가 봅니다.

역사 속에서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 우리를 돌아보는 이야기였습니다. 청년들 이야기를 하면서는 21세기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털어 놓았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모습을 반성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온난화, 코비드, 전쟁을 겪으면서, 온 세계가 새로운 질서(system)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마을의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가 "예수 따름"이라는 주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민하고 묵상하고 질문하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수천 년 뿌리 깊은 전통과 경험과 유산과 지혜를, 묻어 두거나 버릴 것이 아닙니다. 끄집어 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고, 교회가 역사 속에 증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끄집어 내고 실천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실패]]

오늘 읽은 성경에는, 제자들의 잘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노력은 했지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가장 열심히 예수님을 따랐던, 야고보와 요한도 잘못합니다. 못된 이웃을 만났을 때, 그랬습니다. 평소에도 관계가 나빴던 이웃이었습니다. 말도 나누고 싶지 않았고, 인사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웃,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못되게 구는 모습을 보고는, 화가 더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아주 끝장을 내자고,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반대했습니다. 못된 이웃, 사마리아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듯이 사랑하여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그렇게 못된 사마리아 사람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못된 이웃에게서 착한 모습을 찾아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얼굴도 보고 싶어하지 않던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일부러 사마리아 사람들의 동네로 찾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결국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피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하는 말씀이, 피해서 갔다는 뜻입니다.

저마다 예수를 따르고 싶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끝내고 와서 따르겠습니다."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합니다.

저마다 자기 형편이 다릅니다. 하지만, 따르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이들이 모두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쯤은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으면, 열심히 사랑하자는 것 하나는 알겠습니다. 실수하고 잘못해도, 예수님께서는 기다려 주실 것입니다. 열심이 지나쳐서 잘못했던 야고보와 요한도 꾸짖어서 바로 세우고 진짜 제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기억합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이같은 성령의 열매를 날마다 풍성하게 맺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늘 맺은 열매를 헤아려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홉 가지 열매를 하나씩 헤아리다보면, 그것이 사랑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 유튜브에서 듣기 https://youtu.be/L4LgsUzgKbw
- 함께 읽을 수 있는 글 지역 목사와 만남; 로빈 목사님

Sunday, 19 June 2022

주일설교 : 자신을 찾은 사람

 
본문 : 누가복음 8장 26-39절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많이 아픈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주인공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는 갈릴리 호숫가 마을에 삽니다. 착한 마을입니다. 그 한 사람의 아픔을, 온 마을이 함께 걱정합니다. 자기 일처럼 생각합니다. 위험한 곳으로 뛰쳐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줍니다. 지켜 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고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천 년 전 그 마을로 시간여행을 떠나봅시다. 그 마을은 갈릴리 호숫가이면서, "데가볼리"라는 로마 제국의 점령지였습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보내서 힘으로 통치하였고, 군대를 먹이고 입히고 무장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세금이 필요했습니다. 주둔지의 세금은 마을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로마를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데가볼리 지역에는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레기온 10 군단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만큼,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둘 필요가 있었겠지요. 1년 동안 곡물 포도주 야채 고기만 1500~2000t이 필요했습니다. 5톤 트럭 400대 정도의 분량입니다. 400대를 일렬로 세우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그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굶주렸고 영양실조로 고통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지만, 로마는 죽은 사람들에게서도 세금을 받았습니다. 거리에는 부자집 대문 앞에서 굶어 죽었던 나사로와 같은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세금을 낼 수 없어 도망가면, 가족이 대신 그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점령지역 사람들의 인권은 가벼웠습니다. 

로마 군대를 위해서 길을 만들고 물건을 나르는 일에도 마을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if one of the occupation troops forces you to carry his pack one mile, carry it two miles.)" 하신 말씀도, 아무 때나 강제할 수 있는 징집명령이었습니다.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로마 군대의 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불법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서 저항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오늘 읽은 성경에 집중해 봅시다.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에게 붙잡혀서 (1) 옷도 입지 못하고, (2) 집에서 살 수도 없고, (3) 무덤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귀신만 아니라, 로마 시대의 군대와 잘못된 정치가 그를 더 아프게 했을 겁니다. 

크리스천이 성경 읽는 방법은 특별합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돌아보는 방법입니다. 성경에서 아픈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몸은 아프지 않은지 돌아보고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건강한지, 또한, 우리 영혼은 건강하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다 건강해서, 행복한지 꼼꼼하게 성경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모습을, 성경에서 만난 아픈 사람의 형편과, 비교해 봅시다. 지난 3년 동안 코비드19는 우리의 일상을 멈추어 세웠습니다. 마스크를 쓰게 하였고, 이웃과의 물리적 거리를 강제하였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고, 작은 가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더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기후 변화와 전쟁 또한 심상치 않습니다. 아프리카는 벌써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고, 남태평양과 아시아와 나토 연합은 새로운 냉전체계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거센 바람에 에임하이 간판은 넘어지고, 노스코트 도서관 앞의 가장 큰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와 우리 시대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좀더 진지하게 돌아 볼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서 만난 로마의 점령지역, 그곳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겪는 아픔, 스트레스,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21세기 전쟁과 환경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 지구의 아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꼭 닮은 것은 아닌지? 질문해 봅니다. 

오늘 성경에서 만난 사람을 좀더 자세하게 봅시다.

예수님을 보자마자,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큰 소리를 질렀지만, 해야 할 말은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소리만 컸지 그저 외침이었습니다. 단지, 비명 소리일 뿐입니다. 도와달라는 말도 못하고, 그저 비명 소리와 몸짓으로만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자기 의사인지, 아니면 귀신이 약해진 틈을 타고 비져나온 몸부림인지? 그것도 확실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실제로 말한 것은 귀신이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붙잡고 있는 귀신이 말했습니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귀신은 예수님께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첫째, 자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합니다. 이때 감추어져 있던 것이 밝혀집니다. 한 사람을 붙잡고 있는 귀신이, 하나가 아니라 5,000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그 귀신의 이름이 데가볼리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대의 이름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절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귀신들려서 많이 아픈 사람은 절실했습니다. 5,000 귀신에게 붙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로 뛰어 나왔습니다.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온 몸으로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자유가 없었던 그에게, 그것만으로 그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첫째, 그가 예수님께로 뛰어 나온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둘째, 치유받은 뒤에 말할 수 있게 되자, 그가 말합니다. "예수님! 함께 있게 해 주십시요" 하고, 애원합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셋째, 더 큰 기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낱낱이 온 마을에 알렸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환경이 우리를 많이 아프게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거라사에서 고침을 받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지구가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에게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순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모든 아픔을 치료받고,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매 시간마다,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누가복음 #누가8:26-39 #거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