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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22 August 2022

[누가복음 13:10-17] 희망(주일설교)

누가복음 13:10-17
주제 - 희망

차례

1. 안식일에 만난 희망
2. 우리가 예수님처럼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을까?
3. 18세기의 있었던 예
4. 오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희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찾아 보고 싶습니다. 2천년 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 희망이 오늘 우리에게도 희망이기를 소원합니다. 절망이 깊고 어둡더라도, 희망이 새벽같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 희망이 없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18년 동안 아팠습니다. 아파서 몸이 굽어졌고, 굽어진 그 몸이 펴지지 않습니다. 18년 동안 날마다 희망이 꺾기는 절망을 경험합니다.

건강하던 몸이 18년 동안 날마다 무너지고 굽어졌습니다. “조금도” 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픈 사람은 그 심정을 알 수 있겠지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영혼도 힘을 잃고 맙니다. 

그런 절망의 때,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오늘 말씀입니다. 그 만남으로, 절망이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던 것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안식일에 만난 희망

본래, 성경에서 안식일은 자유를 뜻했습니다. “갇힌 곳에서 해방되었다” 하는 뜻입니다. 출애굽을 통해서 자유를 선물로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웃과 동물까지 자유롭게 한다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는 십계명에서도 안식일은 분명히 자유를 뜻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신명기의 말씀은 그 뜻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신명기 5:15) 신명기의 기록입니다.

이 자유와 해방을 뜻하는 안식일에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자유를 얻고, 치료를 받았으니, 예수께서 희망이 되신 상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세상을 치료하고 이웃을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아파서 절망하는 한 여인을 치료한 2,000년 전 사건은, 단순히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것만이 아닙니다. 그 사건에는 희망의 열매도 있습니다 .회당에서는 여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자를 회당 안으로 불러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습니다. 차별을 없애고, 여자의 권리를 찾아 주었습니다. 감히 회당장 앞에서 여자를 편들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18세기의 있었던 예

18세기 존 웨슬리의 예가 있었습니다. 차별받는 죄인들의 권리를 감옥을 방문해서 찾아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찾아가서 필요를 살펴보고, 옷과 담요와 먹을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좋은 열매 맺는 방법을 만들고 다듬어서 평생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배우려고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속회를 만들고 밴드를 만들고 여러가지 소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노예들의 인권을 찾아 주고 해방시키려고 정치 활동까지 하였고, 사회에서 소외된 여자들을 지도자로 세워 감리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감리교회를 뜻하는 메소디스트는, 방법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 싶어서 기도하는 방법, 성경 읽는 방법을 만들고 실천하다가 “메소디트스”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 방법을 따라, 매 순간, 매 시간, 아침에 깰 때와 저녁에 잠잘 때에,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기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의 삶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룩한 삶을 더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마다 자신의 한 시간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처럼 살았는지를 점검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였는지를 반성하고,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닮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시간마다 감사하고, 한 시간마다 일기장에 기록하였습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새벽마다 하루 할 일을 미리 생각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을 지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 그들이 감리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희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온난화, 코비드19, 전쟁, 차별, 갈등의 문제로 아파하는 지구를 치료해야 합니다. 이제는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웃이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비드19라는 스스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바이러스가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족만 잘 살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우리 나라만 잘 살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온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어느 곳 하나라도 아프면 모두 아프고, 어느 곳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세상 모든 것이 함께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께 화를 냈던 회당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분별력을 갖추려면,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존 웨슬리의 방법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합시다. 한 시간마다 기도하고, 일기장에 기록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처럼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시다. 우리도 오직 성경의 사람으로 살아봅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깨어있는 크리스천의 삶의 살도록 합시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절망하며 18년 동안 구부러진 아픈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료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여러분도 이 땅에 희망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늘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이 땅에 기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늘 말씀으로 사셨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 예수님처럼 - 이 시대의 희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유튜브로 듣는 설교 https://youtu.be/_lH0Kn8Z7CM

Sunday, 17 July 2022

주일설교: 사랑으로 만나는 마르다와 마리아



말씀 : 누가복음 10:38-42
주제 : 사랑으로 만나는 마르다와 마리아


차례

1. 마르다의 섬김
2. 마리아의 단순한 마음
3. 간단한 감리교회 소개
4.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있는 교회

오늘 말씀에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입니다. 함께 사는 두 자매입습니다. 눈에 사랑이라는 콩깎지를 붙이고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면, 그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마르다를 먼저 소개합니다.


[[1. 마르다의 섬김]]

마르다 때문에, 오늘 말씀이 시작됩니다. 마르다는 말씀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 모두 등장합니다. 마르다가 주인공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 마르다의 만남, 그 만남이 오늘 말씀의 시작입니다.

만남을 “초대”로 이어가는 것이 마르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성경에는 “모셔 들였다” 하고 기록합니다. 마르다는, 식사 준비를 시작합니다. 간단한 식사가 아니었던가 봅니다.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합니다. 일이 많은 것을 예수께서도 알고 이야기합니다.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있다” 하셨지요.

마르다의 초대가 “너무 많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르다가 잘못한 것일까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마르다가 지금 하는 “많은 일”이 무엇일까? 그래서 살펴 보다가, 뜻밖의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르다가 벌려 놓은 “많은 일”의 정체를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는 “섬김”이었습니다. 성경 그리스어로는 “디아코니아”입니다.

“섬기는 일”, 다시 말해, “디아코니아”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마가복음 10:45) 하고 말씀하실 때에, “섬김”은 예수님의 일입니다. 성만찬 식탁에서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복음 22:27)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섬김”은 예수님의 일입니다. 여기에서 “섬김”은 “식탁에서 (웨이터로서) 시중든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섬김”은 예수님의 일이면서, 동시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섬김”은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마르다가 열심히 하는 “많은 일”이 바로 “섬김”이었습니다.


[[2. 마리아의 단순한 마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마르다”를 편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만난 것도 마르다였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 것도 마르다였고, 그들을 대접하는 것도 마르다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르다는 혼자서 이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성경을 다시 읽어보면,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도 마르다였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도 마르다였고, 마르다에게 대답하는 예수님의 대답이 향한 것도 마르다입니다. 마르다는 당연히 오늘 말씀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마르다”를 편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마리에에게서 찿을 수 있읍니다. 자매 마리아를 좀더 살펴봅시다. 마리아는 오늘 말씀에 잠깐 등장합니다. 엑스트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입니다. 그리고, 겨마리아는 일하지 않습니다. 꼼짝도 않고 앉아만 있는 역할입니다. 마리아는 질문하지도 않습니다. 마리아는 듣기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듣기만 하는 마리아”를 편들어 주십니다. 엑스트라 인생, 마리아를 편들어 주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누가복음 10:42) 하며 격려합니다.

마리아를 격려하는 이유도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주님의 일은 하나뿐”이라는 이유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섬김은 중요하지만, 마리아를 지켜주고 구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감리교회는 “하나뿐”이라는 말씀을 “사랑”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감리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3. 간단한 감리교회 소개]]

잠깐, 감리교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리교회 사람들을, “오직 한 책의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도, 이 말씀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은 하나뿐”이라는, 이 말씀에 기초해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 말씀 때문에 함께 모였습니다. 성경 때문에 모이는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때문에 작동하는 믿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삶을 “거룩한 삶”이라고 부르며, 매일 매 시간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기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뿐이라는 단순함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매일매일 실천하였습니다. 한 책의 사람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이것이 감리교회의 시작부터 전해오는 감리교회의 꿈이고, 특징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이후에 찾아온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 4:4)


[[4.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있는 교회]]

이제 결론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섬김”을 기꺼이 받으셨다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초대에 응하셨고, 마르다의 분주함도 그저 지켜 보셨습니다. “마르다의 섬김”은 예수님의 일이기도 하였고, 특별히 강조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바로 그 “섬김”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인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실천해야 하는 의무인 “섬김”을 마르다가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아무 일도 안하고 듣기만 하는 마리아를 칭찬하셨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은 하나뿐”이라며, 많은 일로 염려하는 마르다를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앉아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칭찬하며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꾸지람이 마르다에게도 위로가 되고, 동시에 우리에게도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의 “섬김”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기만 하는 마리아 때문에 마르다는 “주님의 일은 하나뿐”이라는 지혜를 얻게 되었고, 감리교회 또한 그런 마리아의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마르다도 있고 마리아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분주하고 바쁜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들어야 할 것도 많고, 봐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가져야 할 것도 많은 시대이지만, 그러지 맙시다. 들어야 할 것, 봐야 할 것, 배워야 할 것, 가져야 할 것이 하나뿐인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단순함을 지켜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금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아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랑으로 섬기는 마르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마르다의 섬김으로 마리아를 지켜주는 교회, 섬기는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투지 말고 서로 배려하고 기도하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유튜브에서 설교 듣기: https://youtu.be/VoTbq0iOwo8

Monday, 4 July 2022

주일 설교 : 둘씩 둘씩 -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 이야기

본문 : 누가복음 10:1-11, 16-20
주제 : 둘씩 둘씩


차례

1.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야기
2.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점검하라는 말씀
3. 예수님 곁에서도 방황하는 제자들
4.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야기]]

혼자서 힘들 때, 오늘 말씀이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냈습니다. “증인되어라” 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서로 힘이 되어 주어라”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외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35)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하고, 서로를 위해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는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혼자보다는 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전도서 4:9-10)

[[2. (오늘 말씀은)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점검하라는 말씀]]

오늘 누가 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첫째, “증인되어라”, 둘째, “힘이 되어 주어라” 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셋째로,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잘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 서로 지탱해 주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어떤 도전을 주는지, 오늘 말씀에 집중해 봅시다. 오늘 말씀은 (제자 가운데서도) 특별히 부름받은 제자들에게만 주는 파송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선택한 제자들에게만 말씀합니다. 그들이 각각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중에서도, 그들을 특별히 선택한 까닭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해야 할 일이 있고, 둘째, 그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것이 많으나, 일꾼이 적다”고 합니다. 할 일은 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요. 사람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주변 제자들의 상황이었습니다.

첫째는, 능력이 없어서 꺼립니다. 힘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지쳐서 할 수 없습니다. 핑계 대기도 좋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약해서 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지혜가 없어서 꺼립니다. 일하는 방법을 모르니, 연습할 엄두를 내지도 못합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면, 더욱 두려움이 앞서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어려워서 꺼립니다.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위험한 일에 나서서, 다칠까봐 아예 못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 주변의 상황을 이렇게 묵상해 보면, 나 자신은 무엇 때문에 꺼리는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됩니다. 

[[3. 예수님 곁에서도 방황하는 제자들]]

오늘 말씀의 중심에 있는 예수님의 주변을 돌아 봅시다. 예수님 곁에는 떼를 쓰는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제자들이었지요. 지난 주에 읽고 묵상한 말씀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겠다고 하는 제자들입니다. 그 중에는 12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72명의 제자들을 특별히 따로 선택합니다. “추수할 일꾼”으로 특별히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둘씩 둘씩” 보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 일이 얼마나 어렵기에,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예수께서는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하며,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를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무슨 일인지 짐작하실 수 있으신지요?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거창하게 야단법석일까요?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입니다. 간단한 인사이지만, 그 안에 담긴 “평화”는 훈련된 제자들에게도 많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산상수훈 팔복에 관한 가르침을 기억하시면, “평화”를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팔복 말씀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하셨지요. 그리고 곧바로 이어나오는 구절, “너희가 나 때문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팔복 말씀에서, “나 때문에”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는 더욱 당황하게 맙니다. 예수님의 평화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예로 들어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로 훈련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 야고보와 요한도, 울컥하는 마음에,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택하려고 예수님을 졸랐던 지난 주일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세상은 그렇게, 평화를 선택하기보다는 전쟁을 선택하는 세상풍조였습니다.

그러니,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은 적다” 하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하는 나라입니다. “둘씩 둘씩” 기도를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서로 격려하며,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문”을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오늘 예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저를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함께 하자고, 부르십니다. 서로 격려하며 일하자고 부르십니다. 할 말을 주시는 성령께서 힘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을 이길 권세를 주셨으니 염려말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기고, 평화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제자들교회 #주일설교

유튜브에서 설교듣기 https://youtu.be/CtH952AOzNM